<존재의 일의성>
어떤 하나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벗어날 수도 대체할 수도 없다 하여 일의성이라고 하지만 거시적인 큰 틀인 시간의 무한적 선상에서는 그저 반복적 생성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다.
사람도 탄생의 순간엔 특별한 존재로서 의미가 부여될 뿐 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속된 존재로서 생성의 반복일 뿐이다.
어떤 존재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나열된 항목의 하위 카테고리, 또 그 밑에 있는 최하위 말단 카테고리까지 분류해서 추적하면 결국 그것은 물질로서 같은 성질을 지닌 미시적인 하나의 존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탄생의 이전부터 작은 차이의 반복들이 병렬되어 수많은 물질의 존재가 결합되고 분화되어 생성이라는 대기열에서 잉태의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특별하게 생성되는 것 같지만, 그저 물질의 결합과 분화의 과정에서 탄생하는 반복의 생성 중 하나다.
<분열적 갈증>
인류의 시간은 상징적이거나 권력적인 이미지를 물질에 부여하며 질서를 만들고 파생되는 변이의 변주를 통해 수많은 것들을 생성시켰다. 그렇게 생성되는 무언가는 재현의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이며 익숙하고 편리한 방식은 우리에게 늘 가장 안전한 지대 위에 나열하는 것으로 보편화 되어 왔다.
낯선 것을 배척하는 것은 늘 인류에게 위협을 대처하는 첫 번째 본능이었다. 현대 산업 사회의 구조 또한 생존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방법부터 선택되어 본 속성의 차이를 조금씩 변화시키며 진척될 뿐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자들은 대다수 이러한 본능을 탈주하기 어렵다. 인류는 그래왔고 그렇게 축적된 시간만큼 쌓인 “선천적”이라는 퇴적층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꺼운 우리의 인식체계는 어떤 존재의 일의성에 한계 지점을 뚫지 못하고 분열적인 갈증으로만 표출한다. 수 없는 차이를 통해 생성되길 바라고 늘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과 환경적 변화를 본능적으로 방어하기만 할 뿐 타자의 세계에서 검증되길 기다릴 뿐이다.
<작가노트>
존재의 일생주기를 선형적으로 나열하여 가장 의도성이 없는 탄생 시점의 순수한 지점을 포착하고 조작하는 것이 나의 주된 작업의 소재이다.
그중 2015년 첫 번째 전시로 선보였던 “나의 해부”는 자궁에 잉태되어 미분화된 개체의 탄생 순간을 사물에 대입하고,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서의 자기암시, 동일성의 최초 나열 선상에 오르는 순간들을 표현하였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어두운 공간 안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투박한사물들이 스스로 부각해 드러내는 연출을 한 전시였다.
첫 번째 전시에서 존재가 탄생함에 있어 자기 원시적 배경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물로 나열하였다면, 이번 전시의 작업은 하나의 존재가 탄생 이후에 만들어가는 잠재성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잠재성을 지닌 순간, 상태, 현상은 불완전, 완벽하지 않은 상태, 지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는 상태로 설명된다. 이렇게 잠재성이 내포된 상태의 진동은 상당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자기를 드러낼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 순간에 동일성의 범주를 확장 또는 이탈하고자 하는 “자기기만”을 표현한 작업이 이번 전시의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쓸모가 없을 수도 있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효율성과 합리성은 배제 되고 기능으로서 완벽함을 지녀야 하는 의자나 테이블은 “자기기만”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드러낼 방법에만 전념하고 있다.
존재로서 주목받고자 하는 자기표출 그 자체로서 순수한 의도성만이 드러내는 것이다.
Location: 성남 분당구 대왕판교로 177
Period: 2017년 4월 29일 ~ 5월 13일
Photography: 한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