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기능>
르동일은 서울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11년의 활동을 하며 자신의 창작에 대한 정체성의 모호함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직업적 노선에 대한 갈등을 유도하며 무엇을 만들어야 하며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의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의 작업은 대중성과 대중의 반대 성향에서 모호한 지점을 선택하며 디자이너로서 보다 창작자로서 갖춰야 할 개념적인 질적 소양을 주창하고 합리적인 생산성보다 소비자의 감상적 또는 감성적 성향이 발현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해왔다.
이번 전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보다 한 명의 창작자로서 그가 만드는 ‘기능적 오브제’의 첫 시리즈들을 전시로 보여준다.
<작업노트>
누구나 한 번쯤 멍하게 있으면서 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보면서 말이다. 눈앞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떠올린 것이 분명하다.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연상한다는 것 그 궤도 안에서 벗어날 어떠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내 눈앞에 무언가로부터 시작되어 무언가로 만들어지는 그저 그런 것일 거다. 재료도, 형태나 기능도 모두 그저그런 자기의 테두리를 벗어날 방법이 무엇이 있겠나 싶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떠올린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애를 쓴다. 근데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을 떠올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다. 필사적으로 해본 적도 없는 그 짓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리고 자주 이해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 공허한 짓을 하는 나에 대한 연민은 그 감정이 슬픔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의 어릴 적은 지나친 패배 의식과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로 인식되어 집안에서 참 걱정이 많았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던 것 같다. 7살 때 나에게 전부 같았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전신마비라는 큰 장애를 얻게 되면서 나에게 삶에 의미는 무엇인지 찾으려고 했었지만, 그 무엇의 해답은 결국 무의미였다. 그래서 무언가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는 감정 습관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패배자의 모습이나 무감정, 집중 장애쯤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거울을 보고 자기 점검을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게 무엇인지,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지적당할 건 무엇이 있을지, 정상이 완벽인 것 같은 착시의 눈으로 나를 점검한다. 거짓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는 것은 극도의 예민함과 피로도로 나를 짓누른다. 작업에서만큼은 나는 내가 은폐되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완전한 것, 연약한 것, 무의미하고 존재로서 공허한 것”
스스로에게 거짓을 내포하지 않을 것이다. 완벽을 위한 과정도 아니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 이외에는 어떠한 의도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디자인의 원리, 작업의 순서, 영감을 받는 방법 따위들이 적어도 나에게는 이 순수성의 지속보다 우위일 수 없다.
Period: 2023년 4월 17일 ~ 23일
Location: Ordet, 17, 20135 Milan, Italy
Photography: 르동일